Exagium
To finish my story
nerulkim
2007. 4. 24. 23:15
하루가 시작된 때는 10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이었다.
어제의 막내녀석 골방 도배가 모두 끝나고..그곳에 있던 창고 비슷한 것을
분해 조립해 새로운 형태의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어찌보면
내 몸에 덕지 덕지 붙어있던 습관들을 해체해가는 작업과 비슷했다.
어머님께서는 오늘 모두 끝내자며 손수 무거운 장독들과 물건들을 나르고
계셨다. 그래도 큰녀석이란 계급의식이 발동해 골다공증 이라는 이유를 대
며 그 무겁던 장독들 - 사실 이 시대에 그것도 서울에서 숯을 띄운 장독을
가진 집은 그리 흔치 않다 - 을 모두 옮겼다. 군에 갔다왔다는 미묘한
자긍심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인식을 동반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모든 집안일을 끝마치고 그 지저분 하던 창고에서 아직도 풀 냄새가 나는 이
쁜 골방으로 변신을 한 구석에 앉아 가만히 지난날을 되짚어 보았다.
아버지의 파격적인 인격의 변신과 어머님의 고난, 그것은 극히 작은 부분
부터 시작 되었었는데. 그 와중에도 선험적 지적 사모함은 소진되지 않고
우리 새끼- 아버지...당신 세대에선 자식들을 그렇게 애끓게 호칭하신다-들
은 참으로 착하고 죄짓지 못하고 살았다. 사실 난 이것도 참으로 마음이 아픈
것으로 생각한다.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
도 하며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 때 우
리는 고요히 지금의 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부속 여중을 다니던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누님은 흑석동까
지 가야할 버스 회수권 구입할 때가 될 때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마음을
졸이다 겨우 한장에 60원하던 회수권 몇 권 구입할 용돈을 타가곤 했다. 그녀의
가녀린 손으로 콩자반을 만들어 누런 양은 도시락에 채우고, 마치 그녀의 눈
물로 만들어진 세월을 채우듯이.
당시 난 초등학교 2학년의 내성적이고 다혈질의 장남 카리스마였다. 밑으로
4살씩 터울이 진 아장 아장 걸어다니던 막내와 둘째 녀석이 있었다. 하루는
사당 2동의 소위 우리집에서 다락을 치워-사실 그곳은 치워도 쥐이와 벼룩
이 많이 덤벼들었다- 누나의 방을 만들어 주었다. 누나는 그 또래에 비해
꽤 큰 키였기에 -160정도였을거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다닐 수 있는 그 다
락방이 힘겨웠을 거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한 우리에 뒤엉켜 잠을 자야 했던
당시로써는 그녀만의 다락방 이라는것 때문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다락방은 그녀에게 소녀의 감수성과 꿈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14인치
미닫이 흑백 텔레비젼에서 방송되던 캔디를 볼 때마다 그녀는 눈가에 눈물
을 가득히 담고 있곤 했다. 아마...그녀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대문밖엔 넓은 공터가 있어서..둘째 녀석은 콧물을 소매로 핥아내며 열심히
구슬-다마 치기 라고도 했었다- 따먹기를 해 한아름 안고서는 마치 자기의
보물인양 좋아하곤 했다. 장남이고 상상속에서 살던 나는 그런것이 하찮게 보였
고 그 자식이 그걸 전유물처럼 자랑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을 만
큼만 패주곤 했다. 어느날은 둘째와-사실 우리는 공모자며 콤비라고 자부하
곤 했다.- 귤이 너무나 먹고 싶어 근처 진열된 과일 가게를 지나치며 몇개
씩 주머니에 슬쩍 훔쳐 넣곤 했는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참말임을 그때
깨달았다. 콧 때가 줄줄 흐르는 두 녀석이 몇번이고 과일 진열대에 근접해서
지나치는 지라..곰보 주인녀석이 눈치를 챗는지..우리 두 형제의 머리카락
을 힘껏 쥐고 잡아 들어갔다. 가는 도중 발로 차이기도 하면서 - 우리나라
엔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있지만 그건 유명무실한 것이
었다. 우리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없을 만큼 차이고 패대기면서 거짓 자백
까지 했다. 전에도 몇번의 범죄 사실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 때 나는 곰보들의 열등감이 얼마나 크며 그 외적 표출은 살인을 할 수도
있을 만큼 사디즘적이고 마조히즘적 이라는 진리를 깨우칠 수 있었다.
난 이세상에서 곰보가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다.
우리는 그래도 양심이 있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그리고 집 주소를 그 곰
보에게 끝까지 자백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그 곰보는 세상물 다
먹은 녀석이라..나와 어린 둘째녀석을 분리해 대질 심문을 했다. 기어이 6시간
이 지난 밤 8시에나 누나가 하얀 얼굴로 우리를 찿아왔다. 그 시간에도 아
버지는 일당 노동일을 하고 있었고..어머니는 시장에서 꼬추 말린것을
팔고 있었다.
그래도 부모 덕을 많이 본지라..나나 누나의 얼굴이 통통하고 하얗고 귀티나
게 생겨 보였는지 그 곰보놈은 주황색 귤 3개 훔친것을 초범이 아니었다며
과장을 하더니..기어이..그녀의 가녀린 손에서 5천원이란 큰 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흐른후 그녀는 어머니께 머리채를 잡히며 몇시간이나..맞아야 했
다. " 이 썩을 년아...그래..니 애미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더냐..응,,참고
서 산다고 하드니만..그 참고서좀 내놔봐..아야..이 썩을년아.."
내 안에있던 곰보에 대한 두려움은 심연의 곳곳에 또아리 틀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경로마다 나를 사로잡는 상흔의 근원처럼 행세하곤 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성경에도 곰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마음의 곰보...심령의 곰보...영혼의 곰보에 대해서 말이다.
어른으로 성장해 오면서 곰보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신 후 부터 또 다시 곰보에 대한
두려움들을 새롭게 부각 시키고 계셨다.
내 주위에는 외적인 곰보가 없었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곰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내 안의 녀석은 이미 곰보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냄새나는 미움과 시기, 두려움,
음란함, 게으름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서웠다.
곰보에 대한 두려움이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의문에 일침이 가해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내 안에 이미 곰보를 안고 살아 왔으니 말이다. 곰보는 먼곳에
있지 않고 이미 내 안에 있었다.
하나님을 알아가며 성령의 치유하심으로 내 영혼의 곰보 구멍에 있던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내어 소제하기 시작했다.
기도로 빼내어진 자리에는 더욱더 선명한 곰보 구멍이 생겨났다. 아팠다.
슬펐다. 내 영혼의 얼굴은 선명한 구멍이 뻥뻥 뚫린 곰보였다.
너무도 오랜동안 곰보구멍에 채워져 있던 것들이 난 곰보가 아닌듯 착각하게
했다. 그 구멍을 가리고 있던 맨질한 얼굴에 세상의 화장을 했다.
이기와 시기, 미움과 게으름, 음란함과 세상 학문, 외적인 기준...
놀라운것은 그 구멍이 숭숭 들어나도록 기도와 성령으로 청소를 했지만
이내 그 자리엔 더욱더 단단하고 빼어내기 힘든 것들로 채워져 버리곤 했다.
영혼의 곰보는 육체적 곰보보다 더 끔찍했다.
내 영혼에 선명하고 깊게 패인 그 곰보 구멍에 이젠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것들이 더욱 견고하게 채워지지 않도록 난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기도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누나의 영혼에는 너무도 서러운 곰보 자리가 많다. 어머님 영혼에는 더 큰
영혼의 곰보 구멍이 있었다.
이제 주위에는 눈에 보이는 곰보들이 아닌...마음의 곰보들이 너무도 많다
난 그들의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 주어야 할 지 알고 있다.
그들에게 가르쳐 주리라..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그 곰보 구멍, 그 열등감,
낮은 자존감의 구멍을 채울 수 없다고 말이다.
靑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