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gium'에 해당되는 글 46건

  1. 2007.04.24 익숙해진 슬픔
  2. 2007.04.24 맥도널드
  3. 2007.04.24 부천 자유시장
  4. 2007.04.24 할머님의 돌아가심
  5. 2007.04.24 인생은 아름다워
  6. 2007.04.24 The children of mine
  7. 2007.04.24 소나기
  8. 2007.04.24 똥개
  9. 2007.04.24 To finish my story
  10. 2007.04.24 곰보의 사회학적 이해
2007. 4. 24. 23:21
 
황토빛 목장 숲을 지나가면 그곳엔 이슬들의 아침이 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던 마음들일 것이다.

주머니 속에 담아둔 전화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게 메아리쳐 온다.

나...결혼해...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차 안에선 담배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담배를 피우는

동료들을 가끔 태워준 덕분이라고 웃어넘기며 그녀는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하얀 목덜미가 예전보다 더 희게 보인다.

목장을 경계지우고 있는 희나리 등걸 나무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날이다.

매니큐어를 하지 않은 잘 손질된 그녀의 손끝에 카셋트 테잎이 밀려들어간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왜 죽은 사람 노래를 듣냐는 질문에 그녀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아서 좋다고

한다.

삼십대가 되니 마음이 많이 불안하고 그래.. 음..아이가 크면서

왜 엄마는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 라고 질문하면 무어라 말해 주어야할지

막막해지는 꿈을 꾸곤 한다고 그녀는 작은 입술을 약간 오무리며 말한다.

훈훈해진 오후의 열기 때문인지 녹기 시작한 질펀한 목장 길목으로

경운기가 털털 거리며 힘겹게 지나간다.

47번 국도를 따라 일동까지 나가 그곳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는 마감을 앞두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전화를

한다. 사무적으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녀가 프라이드를 사고 그것을 몸에 익숙하게 익히는 동안

훈련소에서 받아본 그녀의 또박 또박한 글 들은 이별에 대한 짧은

감흥들이었다. 아마도 그땐 정말로 이별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그녀는 연신 울음을 그치지 못했었다.

우리가 만난지 4년이 흐른 그해 겨울. 제대를 보름 남겨두고

그녀는 동료기자와 결혼을 했다.

그 남자는 그녀보다 2살 연하였다.

가끔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 보다가 두툼하게 쌓여있는

눈덩이 들을 발견하곤 이것이 무엇일까 들쳐보기를 했다.

시간의 열기가 녹여버렸다고 확신하던 옛 기억들이 아직도 쌓여있는것을

보곤 흠칫 놀라곤 했다. 남들이 이야기 하는 사랑의 흔적일까...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익숙해진 슬픔이라는 것이었다.

익숙해진 슬픔..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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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2007. 4. 24. 23:21

맥도널드에 가면 불고기 버거가 있다.

불고기 버거 셋트를 주문하면 단아한 까운을 입은 잘 훈련된 미소의

맥-맨 이나 맥-걸 이 "드시고 가실건가요? 가지고 가실건가요?" 라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묻는다.

요즘엔 교회에서도 그런 말씀을 종종 한다고들 한다.

복음을 드시고 가실건가요..아니면 집에 싸가지고 가실건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묘한 뉘앙스의 말씀이라 뭐라고 판단하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 싸가지고 간다고 속으로 말한다고 하는데...사실인지

확인해 본적은 없다.

어제는 휴강을 해서 하루종일 수업이 없는 묘한 날이 되고 말았다.

가슴이 뻥한것이 왠지 바람이 난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드는것이 아닌가.

항상 마음의 갈등이 생기면 냉큼 일을 벌이고 마는 결단맨이라

즉시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나갔다.

홍익문고 일층엔 소설류가 많이 놓여 있었다. 온갖 상념의 전시장...

무라까미 하루끼의 소설을 한창 즐겨 보던 때가 있었는데 그의 소설은 여전히

높은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가간 그의 책...

무료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가죽 소파에 앉아있는듯한 연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책...그의 소설은 그런 약기운을 느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냄새 나는 책..

하루끼의 냄새를 뒤로하고 맥도널드에서 불고기 버거셋트를

주문해 조금씩 깨물어 먹었다.

이 시간에 맥도널드에 와 있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모두 나처럼 휴강인 학생은 아닌듯 싶은데...인생을 휴강한 사람들일까?

어찌되었든 맥도널드에 가면 불고기 버거가 있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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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2007. 4. 24. 23:20
부천 자유시장.

떡하니 현대판 타워링처럼 버티고 서있는 이-마트의 옆자락으로 토끼집같은

자유시장의 입구가 있다.

발 디딜틈 없는 그곳을 북적거리면서 걸어들어가니 사람 사는 생기가 어깨를

절로 신이나게 한다.

김이 모락 모락 나는 솔잎과 어우러진 송편가게. 아주머니들이 뜨거운듯 입을

훅훅 거리며 씹는 그것을 나도 한 개 집어 먹어본다.  

사람들이 사가지고 가는 송편보다 집어먹는 송편이 더 많다. 그래도 주인은

신이난듯 얼굴이 벙글 벙글한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사이로 순대국밥 집이 있다. 오랜만에 시장에서 만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허허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이도 있고, 손자의

입에 뜨거운 국물을 수저로 먹여주는 할아버지도 보인다.

"떨이요!..." " 쌉니다..싸요...!"

추석 명절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찾은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시장은 자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곳엔 훈기가 있고

사랑과 대화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수백개의 형광등의 조명을 받으며 바코드가 찍인 종이에 묶여있던 이-마트의

깔끔한 파가 생각이 났다. 그 파는 이곳 자유시장의 넉넉한 손길에 묶여 어둑한

조명 속에서도 흙 뿌리의 파릇파릇한 그것과는 무언가 달랐다.

무엇일까?

이-마트의 현대식 카트를 끌며 대형매장을 둘러다녀봐도 친한 친구와

함께, 아들과 함께, 형제들과 함께 따끈한 순대국밥을 먹으며 소담스런

삶을 이야기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오직 서늘한 냉동 안개가 마음을 춥게 할 뿐이었다.

삶의 든든한 무엇인가를 가득히 채운 순대같이 길다란 천막속에서

숨쉬던 자유시장을 빠져나와 이-마트의 시커먼 지하주차장으로

경적을 쉴새없이 울려대는 차량의 행렬을 바라다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랑'이었다.

사람들의 옷깃에 벌써 겨울이 묻어나고 있다.

난로를 준비해야겠다.

훈훈한 마음의 벽난로를..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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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2007. 4. 24. 23:19
 
온 가족이 함께 모일 계기가 된 할머님의 장례식.

가족 공동체의 인간적인 유대가 여실히 드러나는 때가 바로 사람이 그 생을 마칠

즈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부조를 하러 오셨고 나중엔

음식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상황이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서울에서

미리 장지로 내려와 하루밤을 보낸 후 번성한 자손들이 모인 곳에서 할머님의

하관식이 있었습니다.

세상이 정말 쉽고 빠르게 변했다는 말이 실감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묘 자리를 고르고 땅을 파내는 것도 포크레인으로 단 몇 분만에 끝났고

입관하고 흙을 쌓아가며 때(잔디)를 이식하는 시간도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포크레인의 차가운 쇠가 탁탁 무덤위의 흙을 마지막으로 다지고 난 후 그곳에

마지막 때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번성한 자손들이 모여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빠르게 빠르게 라는 세상의 구호와 함께 사람의 감정과 죽음에 대한

숭고한 묵상이 사라져 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86세라는 삶을 마치고 평안하게 눈을 감은 고인을 입관하고 그 위에

한줌의 흙을 떨어넣을 때 모든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삽 한 삽 흙을 쌓고 다져가는 작업을 수 시간에

걸쳐 해내던 옛 묘지 조성을 생각할 때, 그 때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또 삶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음 한켠이 안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관의 방향을 조정하는 지관의 일종의 포퍼먼스와..애곡하는 포퍼먼스..

그리고 간단하게 기계를 동원한 흙의 쌓음. 그리고 모두 불에 태우고

버스를 타고 휙 자취도 없이 각자의 삶의 장소로 사라져 버린 자리.

어떤 온기도, 삶의 여로도,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묵상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할머니의 평안한 돌아가심 속에서 저는 모든 욕심의 파쇄와

모든 것들의 용서와 풀어짐을 맛보았답니다. 그분은 아무런 애착도 갖지

않으시고 평안하게 아이처럼 돌아가셨답니다.

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이제 내가 돌아가는 그 시간처럼 가지고 싶습니다.

풀어내고 자유케 하며 용서하게 하는 인자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그분께서 계속 그렇게 저를 묵상케 하십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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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2007. 4. 24. 23:18
 
'깨지지 않는 영원한 세계.'


"안녕하세요 공주님, 어제 밤새도록 그대 꿈을 꾸었다오, 같이 극장엘 갔는데

당신은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어. 난 당신 생각 뿐이야.

항상 당신만 생각해."

"엄마!... 아빠가 손수레에 태워줬는데 운전을 잘 못해. 너무 웃겨서 배가 아파.

우리가 일등이래.. 오늘은 몇 점 땃지?"

"뛰어 ,  소리치는 나쁜 사람들이 쫓아 온다."

한국에 영화가 소개되기 한달 전부터 가슴을 설레이며 기다리던 영화, 타임지에

실린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의 영화는 흑백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나를

압도하던 쉰들러 리스트를 우선 생각하게 했다. 이탈리아인의 눈으로 보여지는

세계대전을 두고 왜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해 했다.

우선 타임지에 실려 곧 한국에 상륙한다는 이야기는 좋은 영화를 기대하는 마음을

더욱 설레이게 했다.

로베르트 베니니 분의 귀도 오라피체.  그는 치열하고 무서운 전쟁을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내기 위해 챨리 체플린 Character로 화면에 나타난다.

그는 조금은 상기되어있고 늘 호기심에 가득찬 천진한 아이와도 같다.

전쟁을 상상하기엔 너무도 먼 '인생은 아름다워' 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고장난

차를 타고 왕의 행차에 끼어 우연과 유머를 가장하며 나타난다.

시작부터 복선을 아무런 필터없이 보여주는 영화는 자못 유치한 옛 영화의 전개를

상상케 했다. 그것은 감독의 여유였을까? 아니 그것은 챨리 체플린의 독재자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페러디를 통해 전쟁의 비극과 무서움을 완충하는 기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야만인, 침묵만큼 큰 저항은 없다" 라는 화면의 내용과는 전혀 무관한 연결되지

않은 대사를 읊는 삼촌 엘리시오 오라피체. 로베르트 감독은 그의 입을 통해 전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관객에겐 전쟁은 아직 먼 기다림이라는 화면을 선사하고

있지만 전쟁은 이미 영화의 처음부터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크린 가득히 어설픈 숨은 그림처럼 숨겨진 복선은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이 되고 있었다.


침묵에 대한 구호는 수수께끼에 심취해있던 레씽 박사와의 이야기 속에서도

고개를 든다.

" 말을 하면 없어져 버리는 것,,,침묵..."

의학박사 레씽은 홀로코스트(holocaust)의 복선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는 교묘하게 귀도와 좋은 친구로 표현되고 있었고 수수께끼를 매개로 이미

영화 속에 전쟁을 첨가해 넣고 있었다. 후반부에 나오게 될 생체실험과 대학살의

장면을 의사 레씽을 세워 맛보게 함으로써 브레이크가 사라져 세울 수 없는

가속도와 충격을 보여주던 첫 장면의 자동차를 연상케 했다.

자동차는 완충작용, 자연스러운 전쟁으로 관객을 이끌기 위한 대 제목이었다.

로베르트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영화 전체를 볼 때 하나의 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모든 장면은 이미 이중적 구조로 영화의 전반부에 모두

표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중구조는 조수아가 생일 때 목욕을 하지 않겠다고

반항할 때도 새롭게 반복되고 있다. '목욕' 그것은 가스실의 새로운 언어였다.

아름다운 언어...

"또 갑자기 만나기를 기대해요" 라며 호기심 가득한 동그랗고 아름다운 눈을 가진

니콜레타 브라치 분의 도라. 그녀는 전쟁을 일으킨 독일 나치와 그 희생이 된

유태인을 이어주는 매개로 등장한다. 그녀는 전쟁을 통과해낸 평화의 산물 아들

조수아 오라피체의 출발점이 된다.

그녀의 남자친구 로돌프는 '아돌프 히틀러'를 표상해 내고 있었고 도라는

로돌프로부터 유태인인 귀도 오라피체에게 도망가버린다. 전쟁에 대한 혐오를

도라를 통해 영화속에 삽입해낸 로베르트 감독의 아름다운 구상이 돋보인다.

초등학교에서 로마의 장학사 흉내를 내며 옷을 벗고 "우리 민족이 얼마나

우월한 민족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라며 독일 나치의 게르만족 우수성을

전쟁의 기반으로 삼은 의식화 운동을 모욕한다.

로베르트 감독은 계속해서 모든 등장 인물의 대사를 통해 독일 나치,

게르만 민족을 경멸한다. 그의 경멸의 말투는 가볍고 유머러스하며 전혀

아프지 않다. 특별히 배꼽을 드러내며 초등학생들 앞에서 장난을 치던 귀도는

전쟁 전체를 조감하는 감독의 눈과 희망의 대리인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 속에서 아버지 귀도는 전쟁에 돌입하는 순간부터

아들 조수아의 세계에 절대 파괴될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 나가도록 도와준다.

그 세계는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희망과 평화의 세계는 깨뜨릴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그것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었고 외계의 모든 것을 재미난

게임으로 보게하는 페러다임 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와 충격, 가스실의

무서움을 목욕으로 표현해내던 홀로코스트(holocaust)의 의식.

그 모든 것을 귀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달동안 계획을 짠거야. 이건 게임이야. 우린 전부 선수야.

일등하면 탱크,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받아, 게임이 끝나면 1000점을 딸 수 있고

엄마에게 갈 수 있어..."

아들의 눈과 마음의 세계에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추하게 파괴될 수 없음을

가르친다. 귀도는 유태인 가스실에서 살아나온 의사 빅터 프랭클이 이야기한

우리의 육체를 공격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의식과 그 의식 속의 평화에 대한

믿음과 희망은 깨뜨릴 수 없다는 실제적인 이야기를 대변해 내고 있었다.

귀도와 조수아의 내면의 세계에 안전하고 강력한 경계를 가진 또다른 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감독은 조수아의 세계를 바라보던 페러다임을 영화 전체 속에서

반응하고 살아가던 귀도를 통해 이미 실천해 주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수아에게

가르치게 한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인생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연신 이탈리아인 감독이 만들었지만 미국적인 냄새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영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미국에게 어필하기 위한

감독의 약간의 타협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냄새는 삼촌의 말인 '로빈 훗'에서부터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로빈 훗'은 미국을 대변하는 영웅이다. 삼촌의 말 '로빈 훗'은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의 큰 별을 달고 나온 탱크로 새롭게 선보였고 그 말(탱크)을 타고 있던

영어를 쓰던 미국인 병사가 그것을 확증해 주고 있었다.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의 어설픔 이라는 채플린적, 미국적 페러디의 도입과

세계평화의 메신저로 등장하며 영화를 끝맺는 미국에 대한 표현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영화에 옥의 티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본다면 로베르트 감독은 이미 미국에

타협한 듯 하지만 미국까지도 경멸하고 있었다.

미국인 병사는 아름다움과 평화의 깨지지 않는 세계를 표상하는

조수아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 초콜렛 먹을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서 내내 웃음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털어 여전히 세계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과

희망을 품어낼 수 있었다. 또한 삶을 대하게 될 나의 태도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고 기꺼이 자신할 수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 영화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보다는 그 속에서 어떤

힘도 절대 깨뜨릴 수 없는 희망과 평화의 세계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맛보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 세대가 만들어 가야할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준 로베르트 베니니 감독에게 감사를 표한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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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2007. 4. 24. 23:17
 
그날은 유난히도 긴 수업시간이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나로서는 왜

저 앞의 밀납인형 같은 여자 담임선생님이 입을 오물 거리며 무엇인가를 말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성적이다 못해 부끄러움 덩어리였던 나로서는 복부를 찌르는듯한 아픔을 이기지
못했다. 왜 밀납인형은 쉬는 시간을 주지 않을까..왜 8살 짜리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쉽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는것에 대해 배려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이
온통 머리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1시간을 참았을까...결국 바지에 똥을 싸고 말았다. 집안에서 장남이라는 기대는
나로 하여금 매우 빨리 똥오줌을 가리게 만들었었다.

오전반 수업이 끝나고 오후반 아이들이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3시간동안 아이들 누구도 내 똥 냄새를 맡지 못한듯 했다. 아직 후각이 민감하게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서둘러 집으로 뛰어왔다.

거리에서 똥이 떨어지지 않은것은 적당한 수분 에너지가 함유된 덕분이었다.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빨아서 빨래줄에 걸었다. 오후 시간이면 어머님이 오기전에
충분히 말라서 다시 입을 수 있으리라.

그 때 그 시간 8살 4개월된 시점의 나란 아이는 그 사건으로 인해 열등감과 부끄
러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는 내 안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린것이었다.

2학년이 되었다. 아버지는 어느날 술이 잔뜩 취해 와서 골목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던 나를 불렀다. 해질녘 오후여서 땅거미가 골목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이 새끼야..막내를 어디다 두고 ..' 모든 아이들이 보고 있던 곳에서 당신께서는
그 커다란 목수의 손으로 따귀를 때렸고 두 발 밑에는 흘러내린 물줄기로 흥건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놀이터 어귀에서 골목을 노려봤다.
아버지는 이미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막내는 이웃마을 파출소에서 아무렇지 않은듯 자고 있었다.
왠 시커멓게 흙으로 더렵혀진 어린아이가 걸음도 빠르게 돌아다니길에 보호

하고 있었다고 한다. 막내는 3 살이었다.

어머님과 아버지가 싸움을 하고 난 후 어머니의 멍든 등에 파스를 붙이며 울던
그 때 그 아이는 내 안에서 더이상 성장을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의 언어적 구타와 열등감의 세례를 받았던 중학교 1학년 때의 그녀석은
더이상 내 안에서 자라나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계속 성장하면서 아무렇지 않은듯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곤했었다.
나에겐 특별히 아픈 기억이 아닌 이해되는 이야기 처럼 하곤 했다. 난 그랬어...

스물여섯이 되었다. 나의 영은 육체적 나이보다 더 어른 스럽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책도 많이 읽었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며 부모님과 관계도 좋았을뿐 아니라 당신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을 긍휼이 여길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성을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난 정신적으로 육체적 나이와 동일하거나 더 어른스러워...

난 교회도 다니고 있고 신앙도 매우 좋은걸? 기도도 잘한다구..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기 시작했다.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은듯 내 삶은 이랬어 라며 고백했던 그 이야기들은 항아리를
만들고 있었다. 가끔 뚜껑이 열릴 때 마다 그것은 지독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 안의 똥을 쌌던 그 아이는 아직 8살로 내 안에 살고 있었다. 독한 냄새를 뿜어
내면서 그 항아리 속에서.

내 안의 따귀를 맞았던 그 아이는 여전히 바지에 오줌을 싸며 울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도 9살이었다.

난 스물 일곱 어른인걸? 난 언제든 섹스를 나눌 수 있는걸? 아이도 낳을 수 있어.
결혼도 할거야... 교회에서 집사도 할건데?  난 전도사야..목사야...지금..

하나님은 내 안에 가득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게 하셨다. 그 울음소리는
너무도 슬프고 아팠다. 애처러웠다.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귀로 들리는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내 영혼의 아이들이 질러대는 소리였다.

내 안에 아직도 갓난 아이로 자라나지 못한 아이가 너무도 많았다.

비가 그렇게 내려 논에 물이 가득히 차오를 때 어머니는 뱃속의 나를 손으로 치며

가슴까지 차오르던 논의 물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7개월된 그 아이는
어머니의 분노에 울고 있었고 내 안에 아직도 살고 있었다.

난 스물 일곱이었다.

난 스물 일곱.  내안에 살고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항아리 안에서 살고 있었다. 가끔 내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도무지 열고 싶지 않았던 항아리를 말로나 행동으로 열려고 시도하곤 했다.

물론 그들은 별 생각없이 한 태도나 이야기 였지만 나에겐 내 안의 아이들이
꿈틀대고 있던, 지독한 냄새가 나던 그 항아리 뚜껑을 열려는 시도로 보였다.

나도 모르는 방어가 시작됐다. 경건함으로 도덕적으로 시니컬함으로, 기도를
많이 함으로 수다로,,열심히 일함으로,,공부로, 나보다 나은 배우자를 찾는것

으로,,친절함과 적극적인 태도로...그러나 언제나 긴장이었다. 갈증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그 커다란 항아리들..항아리안의 아이들..울고있는 아이
아버지를 노려보던 그 아이...똥을 싸고..오줌을 싸던 아이..파스를 붙이던

아이..그녀가 나에게 주었던 그 상처받았던 배신의 아이..

교회에서 아무리 찬양을 해도 하나님께 기도를 해도 갈증은 풀리지 않았다.

성령의 주먹이 커다란 항아리들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상상할 수 없이 고약한 냄새가 피어 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맡을까봐

겁이 났다. 결국 몇개의 항아리가 깨지고 말았다. 깨진 파편이 내안을 찌르기

시작했다. 정죄하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성령의 손길이 그 날카로운 파편을

시나브로 쓸어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완전한 스물 일곱으로 자라났다. 몇몇은 아직도

자라나고 있는 중이었다.

난 스물 일곱이야.

난 스물 일곱이야.

난 스물 일곱.....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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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2007. 4. 24. 23:16
 
후두둑 후두둑.

조립식 막사의 양철 지붕을 깨우는 여름날의 외침.

아직 대낮인데도 깜깜한 오후다. 식당에서 구보로 뛰어 왔지만 이미 젖을데로 젖어

등짝에 착 달라붙는 전투복이 부담스럽다. 빗속에서의 소란했던 빗방울들이 물감을

흠뻑 먹은듯 다채롭게 보인다.

후두둑 후두둑 메트로놈 진동에서 음률로 변조된다.

식물들 사위로 진한 녹색 단조가. 희나리 등걸에 핀 버섯에선 북소리가. 그리고 유

리창을 때리는 아프페지오와 화성을 이루는 붉은 대지의 안정감. 빗방울과 호흡하는

모든 세계가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 살풀이라도 하듯 세차게 토해내는 취한 하늘

아래 몇몇의 감상객이 있을까 자못 궁금해 지기도 한다.

12시 30분. 하절기라 1시까지 내무반에 누워 오침중이다.

아홉살 때 였던가. 장마철 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슨 기념일이라 아침부터

14인치 흑백 TV 앞에서 진을치고 앉아 있었다.

스물 네 해의 감성을 이룬, 황순원 님의 '소나기'가 TV 문학관

타이틀로 방영되었다.

개울가에서 물을 움키며 장난을 치던 소녀. '바보' 라는 한 마디와 조약돌을 뒤로

하고 이유도 없이 내달음치던 소년. 무릎에 생긴 생채기를 보듬던 순수. 맑고 푸른

하늘. 단조로운 흑백의 조화였지만 쏟아붓던 그 굵은 소년의 소나기가 창밖에서도

내렸었다. 소녀가 앓을 때 난 소년이 돼 버렸고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이후 칼라

TV 로 바뀐 후 두번인가 더 보았는데. 두번째 부터는 왠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염이 한두가닥 자랄 시기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막사 밖에선 굵디 굵은 순수가 곤두박질치며 노래하고 있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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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2007. 4. 24. 23:15
 
시험이 끝나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던 부담감이 사라졌다.

자취하는 지체의 집으로 향해가던 길가에 자그마한 똥개 녀석이 이상한 품새로

지나치고 있었다. 그 똥개 녀석을 가만히 보니 네 다리가 모두 휘어서 안장 다리를

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잘 먹지 못해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다리가 휜 것일까.

아니었다. 그 똥개 녀석은 이미 배가 자신의 몸뚱이의 두배나 불러 있었다.

너무 많이 먹어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다리가 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 단시간에 그렇게 휘었을리는 만무했다.

오랜 시간 그 녀석은 자신의 무게보다 더 많은 욕심의 덩어리로 살을 찌워 나갔을

것이다.

그 똥개 녀석을 지나치며 우리의 삶이 투영되어 나타났다. 그랬다, 현실이라는

무게에 짓눌려있는 우리의 영적인 모습. 그 똥개의 휜 다리는 내 영의 휜 다리를

대변하고 있었다.

종종 여러가지 이유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내 영혼. 현실이라는

먹음직 스러운 것들이 내 안에 가득히 채워져 그 무게에 짓눌려 버린 내 영혼.

시험이라서, 직장일 때문에, 데이트 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의 과중한 사역

때문에... 다양한 현실의 무게가 영혼의 다리를 휘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현실이 주는 기름진 것들은 시나브로 내 영혼의 비계덩이를 불려가고 있었고

현실의 다양한 이유들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모습으로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며 적당히 직장생활하며 내가 왜 교회에 가는지 정확한

이유도 모른채 습관적인 삶을 살아갔다.

누군가 예수님 믿으세요 외치며 다닐 때, 누군가 모든것 다 포기하고 선교사로

나갈 때, 시니컬해진 나는 이렇게 되뇌이곤 했다.


나는 똥개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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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2007. 4. 24. 23:15
 
하루가 시작된 때는 10시가 조금 넘어선 시각이었다.

어제의 막내녀석 골방 도배가 모두 끝나고..그곳에 있던 창고 비슷한 것을

분해 조립해 새로운 형태의 모양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어찌보면

내 몸에 덕지 덕지 붙어있던 습관들을 해체해가는 작업과 비슷했다.

어머님께서는 오늘 모두 끝내자며 손수 무거운 장독들과 물건들을 나르고

계셨다. 그래도 큰녀석이란 계급의식이 발동해 골다공증 이라는 이유를 대

며 그 무겁던 장독들 - 사실 이 시대에 그것도 서울에서 숯을 띄운 장독을

가진 집은 그리 흔치 않다 - 을 모두 옮겼다.  군에 갔다왔다는 미묘한

자긍심은 어쩔 수 없는 현실 인식을 동반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모든 집안일을 끝마치고 그 지저분 하던 창고에서 아직도 풀 냄새가 나는 이

쁜 골방으로 변신을 한 구석에 앉아 가만히 지난날을 되짚어 보았다.

아버지의 파격적인 인격의 변신과 어머님의 고난, 그것은 극히 작은 부분

부터 시작 되었었는데. 그 와중에도 선험적 지적 사모함은 소진되지 않고

우리 새끼- 아버지...당신 세대에선 자식들을 그렇게 애끓게 호칭하신다-들

은 참으로 착하고 죄짓지 못하고 살았다. 사실 난 이것도 참으로 마음이 아픈

것으로 생각한다.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

도 하며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 때 우

리는 고요히 지금의 시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부속 여중을 다니던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은 누님은 흑석동까

지 가야할 버스 회수권 구입할 때가 될 때면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마음을

졸이다 겨우 한장에 60원하던 회수권 몇 권 구입할 용돈을 타가곤 했다. 그녀의

가녀린 손으로 콩자반을 만들어 누런 양은 도시락에 채우고, 마치 그녀의 눈

물로 만들어진 세월을 채우듯이.

당시 난 초등학교 2학년의 내성적이고 다혈질의 장남 카리스마였다. 밑으로

4살씩 터울이 진 아장 아장 걸어다니던 막내와 둘째 녀석이 있었다. 하루는

사당 2동의 소위 우리집에서 다락을 치워-사실 그곳은 치워도 쥐이와 벼룩

이 많이 덤벼들었다- 누나의 방을 만들어 주었다. 누나는 그 또래에 비해

꽤 큰 키였기에 -160정도였을거다- 허리를 굽혀야 겨우 다닐 수 있는 그 다

락방이 힘겨웠을 거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한 우리에 뒤엉켜 잠을 자야 했던

당시로써는 그녀만의 다락방 이라는것 때문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다락방은 그녀에게 소녀의 감수성과 꿈을 주었을 것이다.  당시 14인치

미닫이 흑백 텔레비젼에서 방송되던 캔디를 볼 때마다 그녀는 눈가에 눈물

을 가득히 담고 있곤 했다. 아마...그녀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대문밖엔 넓은 공터가 있어서..둘째 녀석은 콧물을 소매로 핥아내며 열심히

구슬-다마 치기 라고도 했었다- 따먹기를 해 한아름 안고서는 마치 자기의

보물인양 좋아하곤 했다. 장남이고 상상속에서 살던 나는 그런것이 하찮게 보였

고 그 자식이 그걸 전유물처럼 자랑 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을 만

큼만 패주곤 했다. 어느날은 둘째와-사실 우리는 공모자며 콤비라고 자부하

곤 했다.- 귤이 너무나 먹고 싶어 근처 진열된 과일 가게를 지나치며 몇개

씩 주머니에 슬쩍 훔쳐 넣곤 했는데.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말이 참말임을 그때

깨달았다. 콧 때가 줄줄 흐르는 두 녀석이 몇번이고 과일 진열대에 근접해서

지나치는 지라..곰보 주인녀석이 눈치를 챗는지..우리 두 형제의 머리카락

을 힘껏 쥐고 잡아 들어갔다. 가는 도중 발로 차이기도 하면서 - 우리나라

엔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있지만 그건 유명무실한 것이

었다. 우리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없을 만큼 차이고 패대기면서 거짓 자백

까지 했다. 전에도 몇번의 범죄 사실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 때 나는 곰보들의 열등감이 얼마나 크며 그 외적 표출은 살인을 할 수도

있을 만큼 사디즘적이고 마조히즘적 이라는 진리를 깨우칠 수 있었다.

난 이세상에서 곰보가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이다.

우리는 그래도 양심이 있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그리고 집 주소를 그 곰

보에게 끝까지 자백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지만...그 곰보는 세상물 다

먹은 녀석이라..나와 어린 둘째녀석을 분리해 대질 심문을 했다. 기어이 6시간

이 지난 밤 8시에나 누나가 하얀 얼굴로 우리를 찿아왔다. 그 시간에도 아

버지는 일당 노동일을 하고 있었고..어머니는 시장에서 꼬추 말린것을

팔고 있었다.

그래도 부모 덕을 많이 본지라..나나 누나의 얼굴이 통통하고 하얗고 귀티나

게 생겨 보였는지 그 곰보놈은 주황색 귤 3개 훔친것을 초범이 아니었다며

과장을 하더니..기어이..그녀의 가녀린 손에서 5천원이란 큰 돈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일주일이 흐른후 그녀는 어머니께 머리채를 잡히며 몇시간이나..맞아야 했

다. " 이 썩을 년아...그래..니 애미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더냐..응,,참고

서 산다고 하드니만..그 참고서좀 내놔봐..아야..이 썩을년아.."

내 안에있던 곰보에 대한 두려움은 심연의 곳곳에 또아리 틀고 있었다.

그것은 내 삶의 경로마다 나를 사로잡는 상흔의 근원처럼 행세하곤 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성경에도 곰보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마음의 곰보...심령의 곰보...영혼의 곰보에 대해서 말이다.

어른으로 성장해 오면서 곰보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신 후 부터 또 다시 곰보에 대한

두려움들을 새롭게 부각 시키고 계셨다.

내 주위에는 외적인 곰보가 없었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곰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내 안의 녀석은 이미 곰보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냄새나는 미움과 시기, 두려움,

음란함, 게으름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무서웠다.

곰보에 대한 두려움이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의문에 일침이 가해진 것이나

진배없었다. 내 안에 이미 곰보를 안고 살아 왔으니 말이다. 곰보는 먼곳에

있지 않고 이미 내 안에 있었다.

하나님을 알아가며 성령의 치유하심으로 내 영혼의 곰보 구멍에 있던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빼내어 소제하기 시작했다.

기도로 빼내어진 자리에는 더욱더 선명한 곰보 구멍이 생겨났다. 아팠다.

슬펐다. 내 영혼의 얼굴은 선명한 구멍이 뻥뻥 뚫린 곰보였다.

너무도 오랜동안 곰보구멍에 채워져 있던 것들이 난 곰보가 아닌듯 착각하게

했다. 그 구멍을 가리고 있던 맨질한 얼굴에 세상의 화장을 했다.

이기와 시기, 미움과 게으름, 음란함과 세상 학문, 외적인 기준...

놀라운것은 그 구멍이 숭숭 들어나도록 기도와 성령으로 청소를 했지만

이내 그 자리엔 더욱더 단단하고 빼어내기 힘든 것들로 채워져 버리곤 했다.

영혼의 곰보는 육체적 곰보보다 더 끔찍했다.

내 영혼에 선명하고 깊게 패인 그 곰보 구멍에 이젠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다른것들이 더욱 견고하게 채워지지 않도록 난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기도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누나의 영혼에는 너무도 서러운 곰보 자리가 많다. 어머님 영혼에는 더 큰

영혼의 곰보 구멍이 있었다.

이제 주위에는 눈에 보이는 곰보들이 아닌...마음의 곰보들이 너무도 많다

난 그들의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워 주어야 할 지 알고 있다.

그들에게 가르쳐 주리라..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그 곰보 구멍, 그 열등감,

낮은 자존감의 구멍을 채울 수 없다고 말이다.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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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rulkim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괜찮은 여자 대학을 나왔고 누가 봐도 너무도 아름다운 몸매와 뛰어난

미모의 얼굴을 가졌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봉긋한 가슴과 예쁜 몸매,

우유처럼 뽀얗고 하얀 피부와 얼굴, 좋은 매너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안도 좋아서 남부러울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말못할 고민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곰보였기 때문이었다.

항상 거울을 볼 때마다 그녀는 눈물로 하루를 시작했고 눈물로 하루를 마감했다.

너무도 가슴이 아파서 그녀는 무당을 찾아 갔다.

어떻게 하면 이 곰보 얼굴을 고칠 수 있을까요 라며 무당에게 하소연을 했다.

무당은 한가지 방법이 있다며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바퀴벌레를 100 마리 정도 잡아서 네 방 머리 맡에 풀어두고 잠을 자라"

그녀는 너무도 기뻐하며 무당이 가르쳐 준 데로 방에 바퀴벌레 100 마리를

풀어 놓고 잠을 잤다.

하루밤이 지난후 그녀는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거울을 찾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도 곱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던

그 곰보 얼굴이 하얀 피부의 맨질 맨질한 얼굴로 변한것이었다.

그녀는 그 얼굴에 곱게 곱게 화장을 하고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밤새 바퀴벌레들이 그녀이 구멍이 숭숭 뚫린 곰보 구멍에 하얀 알을

낳아 채웠기 때문이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靑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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